[한겨레] 아깝다 이책 / 아르케 ‘인권’

한때 반정부 문건에서나 눈에 띄던 ‘인권’이 이제는 흔히 쓰는 단어가 되었다. 엔지오시리즈를 출간해 온 우리 출판사도 인권의 개념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지만, 딱히 출간할 만한 원고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인권의 본질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일반인들이 교양으로 읽을 만큼 쉽게 쓴 원고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젊은 인권활동가가 인권 입문서를 번역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매우 반가웠다. 동시에 걱정도 밀려왔다. ‘번역의 경험도 없는 친구가 국내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저자의 책을 번역한다?’ 베스트셀러와는 무관한 책을 내는 출판사로서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검토용으로 받은 원서, 국내 인권전문가들의 역자에 대한 강력한 추천, 그리고 무엇보다 쉴 새 없이 인권 이야기를 쏟아내며 책을 소개하는 역자의 열정에 그만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2년여의 고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역자의 초벌번역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한테 직접 인권학을 배웠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인권활동을 해온 역자의 전문성이 번역에 녹아들 수 있도록 조언을 하며 2차, 3차 번역을 요구했다. 그 결과 저자가 원서에서 의도한 ‘명쾌하고 쉬운 문체’의 번역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번역서 제작으로는 짧지 않은 2년 6개월 만에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저자는 “인권의 이론은 여러분의 어머니와 조카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쉬워야 한다. 왜냐하면, 인권의 이론은 실천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며, 그 실천의 주체를 위한 것이지 고매한 학문의 세계에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를 강조해왔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평범한 시민이 제기할 수 있는 인권에 관한 질문들에 명확한 해답과 생각거리를 던져주며, 각 학문체계에서 제기하는 상반된 주장들로 엉킨 실타래를 실천이라는 핵심어로 풀어내고 있다. 더구나 역자는 본문에 나오는 각종 사건, 개념, 기구, 인물 등에 대해 상세한 역주를 추가하면서 이 책의 가치를 더했다.

이 책은 파키스탄의 명예살인 등 끔찍한 인권침해 사례들로 시작한다. 이러한 인권침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하고, 효과적인 실천을 위해서는 이러한 현실과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준, 즉 이론적 무기로서 인권의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오늘날 인권의 담론이 법률에 갇히면서 그 본질적 의미가 상당히 후퇴했다고 판단하고, 사회과학이 인권 담론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저자는 현행 체제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보장받아야 할 ‘올바른 처우’가 바로 인권이라면, 그 ‘올바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이러한 이론을 인권의 역사와 인권을 둘러싼 여러 논쟁을 훑어가면서 훌륭하게 설명해낸다.

안타깝게도 아직 이 책의 독자는 인권을 공부하는 학생과 연구자 혹은 실무 담당자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인권의 이론과 실천’이라는 주제가 아직 어렵거나 낯설게 들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철학에서 사회학, 인류학까지 다양한 학문의 시각으로 인권을 논하는 이 책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독자층은 광대한 만큼, 인권에 대한 교양 수준의 지식을 갖고 싶어하는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이형진, ‘인권 입문서’에서 영감을 퍼가세요,<<한겨레>> 2006-11-30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75468.html







 

티스토리 툴바